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네치아 공화국 (문단 편집) === [[동로마 제국]]의 [[패권]] 상실 === 동로마 제국의 [[지중해]] 패권 상실로 [[8세기]] 중엽에 이르면 베네치아는 북이탈리아에 남은 유일한 동로마의 거점이 되었다. 이때 베네치아는 친(親) 동로마, 친(親) 프랑크, 친(親) 랑고바르드, 완전한 자주국으로의 독립을 원하는 세력이 나뉘어 있었다. 이들은 끊임 없이 경쟁하여 세습 왕조가 창건되는 것을 막았다. 베네치아는 이 시기부터 서서히 어촌에서 '''무역과 교역의 중심지'''로 탈바꿈 하였다. [[조선업]] 또한 발전하여 후일 베네치아의 강력한 [[함대]]의 기반이 되었다. 한편 810년 프랑크의 [[피핀|피핀 카를로만]]과 전투하여 승리한 이후 베네치아는 사실상 독립하였다. 9세기 중반부터 베네치아의 해군력은 상당히 강해졌고, 이를 이용하여 [[이스트라 반도]]도 영향권 아래에 두게 되었다. 이후 10세기 말부터 내부분열이 완화되자, 베네치아는 [[아드리아 해]]로의 진출을 꾀하게 된다. 1000년 베네치아 도제 피에트로 2세 오르세올로(Pietro II Orseolo)는 [[크로아트 왕국]]과 아드리아 해에서 암약하는 슬라브 해적들을 때려잡으며 [[달마티아]] 일부를 차지한 이후 달마티아 공작(Dux Dalmatiae)를 칭했다. 1082년 베네치아는 동로마로부터 [[금인칙서]]를 받아내었고,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베네치아의 독립이 다른 북부 [[도시국가]]들에 비해 늦었던 이유는 아드리아 해 일대의 지리적인 특징에도 있었다. 아드리아 해의 양안, 즉 [[발칸 반도]]와 남이탈리아를 모두 영토로 삼고 있던 동로마 제국은 베네치아가 약간이라도 반항할 낌새를 보이기만 하면 바로 해상 봉쇄를 시행하여 베네치아의 목줄을 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71년 [[만치케르트 전투]]로 동방 방어선이 붕괴되어 동로마 제국의 발등에 급한 불이 떨어지고 동시에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 기사들이 남이탈리아를 장악하고 동쪽 그리스 본토를 넘보면서 베네치아에 신경 끌 여를이 없어지게 된 [[알렉시오스 1세]]는 그리스를 침공한 로베르 기스카르를 몰아내는데 베네치아의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각종 무역 혜택과 함께 베네치아 도제를 명목상 달마티아 공작으로 임명하면서 사실상 베네치아의 독립을 승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